혹시 궁(宮)에 가보신적 있나요? 예전같으면 임금님이 사시는 궁에 일반인이 들어간다는 것은 곤장을 100대쯤 맞을 만한 일이었겠지만... 지금이야 입장료만 내면 누구나 가서 볼 수 있는 곳이니 많은 분들이 다녀오셨겠죠. 사실 특별히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지 않고는 오히려 가지 않는 곳이죠.
저 역시 어릴때 부모님 손을 잡고 간 후 최근 외국에서 온 손님들을 안내하기 위해 한번 다녀왔었답니다.
예전 중국에서 살 때 중국의 왕궁인 자금성에는 여러번(역시 친지 및 손님들을 안내하기 위해서였죠)다녀왔었는데.. 정작 우리의 왕궁에는 몇 번 와본 기억이 없다는게 약간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손님을 모시고 간 경복궁. 우리 왕조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마치고 투어(?)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경복궁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 중국 자금성에 대해 알고 있는 것보다 적다는 것에 또 한번 부끄러워졌습니다. 중국은 여행을 많이하면서 자연스럽게 얻은 지식과 여러 차례 자금성을 드나들면서 축적된 지식이 있었는데... 우리의 유산인 경복궁에 대해서는 안내판에 적혀있는 이야기 외에 별로 해 줄것이 없더군요.
부끄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계속 투어를 했는데... 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전 임금님들이 앉으셔서 집무를 보시던 어좌(御座)였습니다. 그 위에 앉으셔서 천하를 호령하셨던 자리. 세상을 굽어보던 자리였다는 생각을 하니 슬쩍 앉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더군요. '이런 것이 바로 권력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집에 와서 사진을 정리하다 다시 한번 어좌 사진을 보니 문득 예전 중국 자금성에서 보았던 중국 황제의 어좌가 떠오르더군요. 두 어좌를 비교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선 전체적인 모습을 비교해보겠습니다. 왼쪽이 우리 임금님의 어좌이고 오른쪽이 중국 황제의 어좌입니다. 붉은색 단청으로 장식한 우리의 어좌와 온통 황금색으로 장식된 어좌. 겉으로 풍기는 모양새는 중국의 어좌가 더 화려해 보입니다. 중국 어좌의 위쪽에 붙어있는 편액에는 '정대광명'이라고 적혀있습니다. 우리의 어좌 밑에는 군신들이 앉아 왕과 정치를 논하고, 나라일을 돌본 반면, 중국의 어좌 아래에는 따로 좌석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마 암살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닐까?'라고 추측을 해보기도 합니다.
좀 더 가까이 살펴보죠.
먼저 우리의 어좌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의 어좌는 약간 넓은 반 침상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그 뒤로 작은 병풍이 드리워져 있고, '일월오악도' 병풍이 걸려있습니다. 백과사전을 뒤져보니 '일월오악도'는 임금님의 어좌 뒤에 걸리는 병풍을 말하며, 창덕궁의 인정전, 창경궁의 명정전, 경복궁의 근정전, 덕수궁의 중화전 등에 각각 1점씩 부착되어 있고, 병풍, 액자, 벽장문짝 등으로 꾸며진 것도 있다고 합니다. 아래는 일월오악도에 대한 간략한 설명입니다.(출처 다음 백과사전)
하늘에 있는 붉은 해와 흰 달은 각기 왕과 왕비를 상징한다. 왕을 상징하는 오봉산은 중국전설에 나오는 이 세상에서 가장 높고 성스럽다는 곤륜산으로, 네모진 바위를 첩첩이 쌓아올린 듯한 산봉우리다. 계곡 양쪽으로 쏟아져 내리는 힘찬 폭포, 동심원 권으로 처리 된 물구비, 포말을 일으키며 튀어 오르는 파도, 좌우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소나무들은 한결같이 도식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한 마리의 동물도 보이지 않는 독특한 환상의 세계를 전개하고 있으며, 왕이 앉는 용상의 뒤를 장식하는 그림이어서 도화서의 화원이 원본에 따라 치밀하고 장엄 화려하게 그렸다.
일월오악도는 중국의 음양오행사상과 풍수지리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음양을 해와 달로, 오행을 다섯 봉우리로 표현하였다. 일월오악도에 나타난 해, 달, 산, 솔, 물 등은 천계(天界),지계(地界),생물계(生物界)의 영구한 생명력의 표상으로 여러 신들의 보호를 받아 자손 만대까지 오래도록 번창하라는 국가관의 투영이자 왕실의 지고한 권위를 나타낸 것이다. 또한 백성들의 태평성대를 염원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일월오악도의 채색은 거의 비슷한데 산은 푸른색, 소나무는 빨간색, 물은 흰색, 달은 회색, 해는 빨간색, 솔잎은 초록색 물감 등을 써 그렸다. 즉 오색을 잘 배합하여 한국적 감각으로 묘사하였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어좌가 있는 근정전의 높다란 천정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좁은 곳에 앉아서 좁은 생각을 하기보다는 높다란 천정의 건물에서 탁 트인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느낌도 들었고... 전체적으로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왕의 위엄이 느껴지는 구조였습니다.
중국의 어좌를 살펴볼까요? 자금성에는 여러개의 어좌가 있지만, 지금 비교해 볼 어좌는 건청궁에 있는 어좌입니다. 건청궁은 각 시대별로 사용되는 목적이 틀린데요. 황제의 침실로, 개인적인 공간으로 사용된 적도 있었지만, 청나라 시대의 옹정제라는 왕부터 건청궁에서 군신을 접견하고 정부를 보거나 연회를 즐기는 장소로 사용했습니다. 건청궁의 어좌는 말 그대로 의자를 형태를 띄고 있고, 우리의 어좌로 올라가는 길이 하나인 반면 중국의 어좌는 올라가는 길이 여러 곳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변에 여러마리의 용을 조각하거나 그려놓고, 많은 장식품을 배치해 왕의 위엄을 나타내려고 했습니다.
위에 걸린 '정대광명' 현판은 장식 이외의 다른 역할을 하기도 했다는데요. 현판 뒤에 차기 황태자의 이름을 적어놓은 종이를 보관하게 했답니다. 황태자를 정해놨다는 것을 공표함으로서 쓸데없는 분쟁을 종식시키고 황권을 강화하는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이 곳이 바로 어좌가 있는 근정전의 바깥 모습입니다. 앞으로는 문무백관들이 서열에 따라 서있는 자리를 구분한 품계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계급대로 줄을 서야하는건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전반적으로 상당히 한산한 모습입니다. 경복궁을 찾는 관광객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만...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려고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면 중국의 자금성은 우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북경에 세계적인 관광지이기에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관광객이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사진에서 보이는 같은 모자를 쓴 단체들은 거의 대부분 중국 각 지역에서 올라온 단체 관광객들입니다. (중국은 패키지 여행을 갈때 똑 같은 모자를 나누어줍니다. 어디를 가든지 찾기 수월하기 때문이죠) 그들은 자신들의 문화 유산을 보기위해 아침부터 끝나기 전까지 계속해서 몰려들곤 합니다. 우리나라의 모습과 비교할 때 사뭇 다른 느낌이죠.
권력을 상징하던 어좌가 지금은 단지 관광객들의 눈 요기감으로 변질되어 버렸지만, 그 위에서 천하를 호령했을 왕들을 생각하면, 저 단순한 의자가 주는 느낌이 상당히 무겁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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