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타락은 위정자들과 재판관들에게 그 원인이 있었습니다. 불법을 제거해야 할 지도자들이
오히려 불법과 결탁했고, 약자와 뇌물을 바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외면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죄로 인해 멀어진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에 조정과 중재가 필요했습니다.
우리가 변론하자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제를 상실하고 단지 외식된 제사에 치우치고 극악한 행위로 인해 은총을 기대할
수 없는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엄한 책망에 놀란 백성들에게 부드럽고 다정하게
서로 의논하자고 초청하십니다. 부드러우면서도 애절한 심정으로 사죄를 위한 변론에로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납니다. 산더미 같은 거대한 죄가 가득할지라도 은혜로우시고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이와 동시에 자기 백성을 버릴 수 없는 하나님을 깨닫고 그분께로 돌아온다면 ‘눈과 같이’,
‘양털같이’ 희게 될 것입니다(18절). 그들이 주님의 용서를 깨닫고 돌아온다면 원수의 유린으로 황폐화된
땅에서 기아의 굶주림으로부터 벗어나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게 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회복할 것이라 하나님의 사랑은 유다를 정결케 하기 위하여 썩을대로 썩어버린 그들을 부르시는 한편, 끝까지
패역하는 자들에게는 준엄한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택하신 백성을 정결케 하사 구속의 은혜를
진행시키려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배려를 모른 채 우상 숭배에 완고하게 집착하는 백성들은 그것이
얼마나 무익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가나안의 우상 숭배는 상수리나무같이 큰 나무 아래 제단을
쌓거나 산 위에 산당을 짓고 그곳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기뻐한다는
것과 동산을 택한다는 것은 여호와의 성전을 버리고 우상 숭배에 빠져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사야는 이로 인해 백성들이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받아 수치를 당할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처음과 같이 회복하실 것을 말씀했습니다.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