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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야기/중국을 풀어보자

2007년에 떨어진 별들

by 차이나는 스토리 2007.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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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도에는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수 많은 유명인들이 유명을 달리한 한해이기도 합니다.

 

1. <신의 목소리> 루치아노 파바로티

 

 세계적인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9월 6일 오전 5시(이탈리아 현지시각) 이탈리아의 자택에서 71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지난해 7월 미국 뉴욕에서 췌장암 수술을 받았던 파바로티는 이후 자신의 고향인 이탈리아 모데나의 자택에서 요양해왔으며, 이미 8월달 부터 신장기능이 갑자기 정지되고 의식을 잃는 등 위험한 고비를 보였다고 한다.
 신의 목소리라고 추앙을 받았던 그의 목소리를 더이상 Live무대에서 들을 수 없게 되었다.
 
2.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투하 조종사> 폴 티베츠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히로시마에 인류 최초로 원폭을 투하한 폴 티베츠(향년 92세) 예비역 준장이 11월 1일 사망했다.
 "에놀라 게이"라는 자신의 어머니 이름을 예명으로 가지고 있는 B-29 폭격기를 타고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에 일본 히로시마에 "리틀보이"라는 이름의 원자폭탄을 투하했으며, 이 폭탄으로 인해 일본인 직접사망자 7만여명, 주택 6만여채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고, 그 뒤에 퍼진 고열과 방사능으로 인한 공식 사망자가 총 24만명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티베츠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원자폭탄 투하는 전쟁의 종료를 위해 꼭 필요한 선택이었으며, 이 선택으로 인해 더 있을지 모를 미군, 일본군, 연합군 등의 무가치한 희생을 막을 수 있었다."리고 밝힌바 있다. 
 
3.<소련을 나눈 대통령> 보리스 옐친

 4월 23일 러시아의 전 대통령이었던 보리스 옐친이 심장병으로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향년 76세.

옐친은 1991년 7월 10일에 러시아연방(구 소련연방)의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며, 8년간의 임기 중 주도적으로 소련을 해체한 대통령이었다.

 그 당시 소련의 해체는 냉전시대의 종말과 함께 세계의 힘이 미, 소 양대국에서 미국의 일방적인 독주로 옮겨가는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옐친 대통령도 2007년의 역사에 그 이름을 묻었다.

 

4. <대통령과 UN총장을 역임한 유일한 사람> 쿠르드 발트하임

 영세 중립국인 오스트리아 외교관 출신으로 1972년 ~ 1981년까지 UN 제 4대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이후 1986년 국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UN사무총장과 대통령을 두루 역임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들을 수용소에 보내는 나치스의 일원으로 참여한것이 밝혀지면서 상당한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현직 대통령이면서 미국의 "입국감시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6월 14일 89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숨졌다.

 

5. <현대 영화의 한획을 그은 거장> 잉그마르 베리만

 2007년 7월 30일 스웨덴의 세계적 영화감독인 잉그마르 베리만이 자신의 집안에서 8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는 일생동안 54편의 영화와 126편의 연극, 39권의 책을 발표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깊은 사상성과 ?은 예술성을 보여줬으며, 세계 영화의 발전사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예술인 중 한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었다. 그는 생전에 4차례나 아카데미 상을 거머쥔 대단한 감독이었다.

 

6.<저널리스트의 귀감> 나가이 겐지

 지난 9월 미얀마의 양곤에서 발생한 반 정부 시위를 취재하던 중 진압군의 총에 맞아 사망한 프리랜서 사진기자인 나가이 겐지. 올해나이 51세.

 그는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카메라를 통해 반 정부 시위와 그를 진압하는 정부군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모든 저널리스트들의 귀감이 될 만 하며, 아직까지도 그를 추모하는 글들이 인터넷에 올라오고 있다.

 

7. <또 다른 나를 구하던 세계적 작가> 시드니 셀던

 

 B급 시나리오 작가에서 기네스 북에 오른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된 시드니 셀던이 올해 1월 폐렴으로 사망했다. 향년 90세.

 1941년에 B급 시나리오 작가로 데뷰했던 그가 1947년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으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고, 뮤지컬 작가로 TV드라마 작가로 연속 히트를 친 후 1967년 소설가로 데뷰했다. 그의 책은 총 181개국에 51개 언어로 번역되어 2억 8천만 부가 판매되면서 작품이 가장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된 작가로 1997년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8. <왕관없는 왕> 쿤사

 미얀마의 반 정부 지도자이며, 미국에 유통되는 마약의 60%를 공급했던 마약왕 쿤사가 지난 10월 26일 자택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다. 74세.

 세계의 수 많은 사람들에게 마약이라는 악을 뿌린 쿤사는 원래 중국인 아버지와 미얀마의 소수민족인 샨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동남아의 황금삼각지대에서 마약재배로 자신만의 왕국을 구축해 30년간 군림해왔다.

 

9. <파키스탄 민주화의 쟌다르크> 베나지르 부토

 

 2007년 12월 27일 파키스탄 전 총리인 베니지르 부토 여사가 라왈빈지에서 실시된 선거유세에서 연설을 한 후 자살폭탄테러로 사망했다. 1953년생인 부토여사는 올해 54세.

 전 총리였던 줄피카르 알리 부토의 장녀이기도 하다. 영국 옥스퍼드에서 유학했으며, 이슬람권 최초의 여성 지도자이기도 한 부토는 아버지가 모하마드 지하 울 하크 육군참모총장의 군사쿠테타로 실각하고 처형된 후 부친이 창당한 파키스탄인민당(PPP)의 중앙위원이 되어, 야당연합체인 민주주의회복운동(MRD)의 일원으로 반정부운동을 벌였다. 1981년 하크 정권에 의하여 체포되어 약 3년간 옥고를 겪고 1984년 유럽으로 망명, 망명지에서 PPP를 원격조종하는 한편, 계엄령 철폐와 하크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했다.

 대통령이 계엄을 해제하자,1986년 4월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 전국을 돌며 민주화운동을 주도하였다. 1988년 8월 대통령 하크가 비행기추락사고로 사망하자, 11월 선거에서 PPP가 여당을 누르고 최다의석을 획득, 무소속의원을 영입()하여 총리로 취임하였다. 취임 후 11년에 걸친 군부독재의 유산을 청산하기 위한 민주화개혁을 시도하였으나 군부와 야당의 견제로 좌절되었으며, 1991년 총선에서 패배하여 총리직에서 해임되었으나 1992년 부터 현 정권 퇴진과 조기총선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를 벌여 1993년 10월 재 집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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